아꽁이지꽁이_이식2017.12.12

신장 1개로 신장이식수술 전까지 18년 동안의 수치들 본문

신장 이식 후 건강과 일상/신장이식수술 전 자료

신장 1개로 신장이식수술 전까지 18년 동안의 수치들

아꽁이지꽁이 2023. 11. 26. 01:29
728x90
728x90

안녕하세요~
그 동안은 신장이식 후 제 건강상태 위주의 글을 올렸었어요~
최근에, 이식 수술하기 전에 수치가 얼마나 급격하게 나빠졌을 지, 어렸을 때부터 신장이 안 좋다고 들었는데 그 때 당시에 수치가 얼마였을지 궁금증이 생겼어요~
다행히 요즘은 앱으로 수치 확인이 가능해서 한 번 정리해봤어요~
 
제가 2살, 3살에 배가 빵빵하게 부풀어서 전북대학교병원을 방문하게 되었고
소변배출이 되지 않는게 원인임을 알게되었다고 해요

주기적으로, 어느날은 엄마 손잡고, 어느 날은 아빠 손 잡고 버스타고 전북대병원을 다녔어요
초등학교 때 병원을 자주 다니다 보니 중학교 때까지 1년 개근상을 한번도 받질 못 했어요~
그래서 개근상 받는게 소원이였던 적도 있었는데, 고등학생때 이뤘네요ㅋㅋㅋ
처음 개근상 받고 신기하면서도 좋고 별거아니네 싶으면서도 기분이 이상했던 것 같아요~
 
 
제가 기억하는 시기인 유치원??때부터 병원에 갈 때마다 엑스레이를 항상 찍었다고 생각할 정도로 많이 찍었어요~
지금 생각해보면, 소변 참고 찍어서 힘들어했는데 엑스레이 뿐만이 아니였던 것 같아요
물론, 엑스레이 판?을 교체하던 모습도 많이 기억에 나지만요
 
 
어렸을 때라 검사 때마다 울면서 하기 싫어하고 힘들어했었는데,  아빠는 꼭 검사 잘 마치면 5천원을 주겠다며 용돈으로 저를 유혹하셨고~
어렸을 때부터 자낳괴(자본주의가 낳은 괴물)였던 저는 그 말에 검사를 무사히 마쳤던 것 같아요ㅋㅋㅋㅋㅋㅋ

피뽑을때 힘들었던 기억은 없는데 촬영때 힘들어했던 기억이 많아요
대기실에서 기다리던 거, 소변을 참지 못 해서였나 제 순서였는데 제 상태보고 더 기다려야한다고 해서 힘들었던 거, 검사땜에 소변 참는 것이 힘들었던  거 등이요~
 
전북대학교병원에 입원도 많이 했었는데,
간호사쌤들이 너무 친절했고 (6년전 이식 수술때도 너무 친절했음)
제가 어려서 많이 이뻐해주시고 머리도 한번씩 묶어주셨어요~
한 때, 당시 간호사쌤들을 찾고 싶은 맘이 있었을 정도로 간호사쌤들이 좋았어요~
 
어떤 날은 맞은편 자리에 입원해 있던 이름도 나이도 하나도 기억 안 나는 같은 병실쓰는 모르는 오빠랑 동전으로 홀짝해서 돈 따먹기(?)를 하고 승부욕에 불타올랐던 재미있던 기억도 있네요
외출 허가 받고 이모랑 엄마랑 전북대병원이랑 가까이 있는 동물원에도 다녀왔던거 같아요ㅋㅋㅋ
동물원이 아니라 공원이였을 수도 있지만요~
 
 
1999년도, 초등학교 5학년때, 당시 전북대학교 비뇨기과 담당 교수님께서 여기서 더이상 할 수 있는 게 없다, 서울대병원 비뇨기과 교수님께서 더 잘 아시니 서울대학교병원 어린이병동 비뇨기과로 전원하는 것을 권하셨어요
어린 딸을 고치고 싶으셨던 부모님은 시골에 살았지만, 전북대병원보다 훨씬 더 먼 서울대병원으로 전원했고
아빠 손잡고 고속버스타고 지하철타고 혜화역을 많이 갔던 기억이 나요~
특히 동굴속에 엄청 긴 에스컬레이터가 있던 역(충무로역)은 어렸을 때 외래가던 길 중에 좋아하던 장소였어요ㅎ
 
아빠는 항상 고속버스 타기전에 음료수를 사주셨는데, 주로 뚱뚱한, 바나나우유를 제가 골랐던 것 같아요~
그리고 아빠는 버스에서 신문을 보시면서 올라가고요~
 
어느날은 진료끝나고 고속버스터미널 근처의 중화요리집을 아빠가 맛집이라고 데리고 갔는데, 그 때 먹었던 짜장면이 너무 맛있던 기억이 있어요~
짜장면의 면만 먹는데, 그 때 처음으로 건더기까지 먹었던ㅋㅋㅋ

그리고 요로장애때문에 더 화장실을 자주가고 못 참는데, 고속버스에서 너무너무 힘들어했던 기억이.... 많네요
버스는 막히지, 화장실 급하다고 말도 못 하지... 방법은 없지.... 소변은 못 참겠지...ㅋㅋㅋ
그래서 지금은 화장실을 언제든 갈 수 있는 KTX를 선호합니다ㅋㅋㅋ
 
서울대학교병원에 입원했던 어느날은 엄마랑 친척언니인가 이모인가랑 도로 건너편에 있던 대학로도 외출허가 받고 산책 다녀오고 그랬어요~ㅎㅎ
 
고등학생때 부모님이 바쁘신데 외래 날짜가 다가와서
제가 "나 혼자 찾아갈 수 있어!! 아빠랑 서울대병원 간게 몇번인데!! 길 다 알지!!!" 자신을 했고
그래도 불안했던 부모님은 남동생이랑 다녀오고 진료 끝나면 친척언니들이 데리러 갈 거라고 했었어요~
저는 자신만만했는데, 처음 타보는 지하철은 어느방향인지 너무너무 헷갈려서 동생데리고 이쪽편 갔다, 저쪽편 갔다 왔다 갔다ㅎㅎㅎ
어찌갔는지는 기억 안 나지만 아마 물어물어 겨우 갔던 것 같아요~
그 때 당시엔 몰랐지만 전 엄청난 길치와 방향치를 가지고 있더라구요~ㅋㅋㅋ
 
 

그리고 엄마는 저때문에 무속신앙? 점이나 사주를 자주 보러다니게 되었더라구요~
어린 기억에 수술 10번이상했다고 생각할 정도로 많이 했고,  수술때마다 엄마는 불안함 마음에 점이나 사주를 보러 다니게 되었대요~
그때마다  저는 장수하니까 괜찮다는 말을 들었지만, 부모맘에 수술자체도 걱정되고 살아나올 수  있을까(?) 하는 걱정도 하셨던 거 같아요

수술하니 생각나는 건, 수술 침대에서 티비서 보던 수술실 천장을 보다가 링겔에 마취제를 찌르면 잠시뒤 마취제가 들어가는 바늘이 있는 부위가 따끔하니 좀 아프다 기억이 사라지던ㅎ
그리고 수술 끝나고 다들 느끼는 기침하면 배아프고 방귀 낄때까지 금식이여서 배고픔을 참았던 기억이 있네요~



그냥 어렸을 때 수치들 쓰려다 옛 기억들도 쓰고 있는데, 눈물이 나네요ㅋㅋㅋㅋㅋ
그냥 지금 제 나이가 30대 중반인데 그때 당시 부모님 나이가 지금 제 나이보다 어리실 때부터 아픈 딸자식때문에 너무 고생하셨던 것 같아서 그런 것 같아요


매번 요로장애 차도도 없는데 제 기억에 없는 시절부터 병원에 꾸준히 데리고 다니시고
시골에서 올라와서 서울대병원까지 가는 시간은 지금 생각해보면 적어도 5시간 이상 걸렸을 것 같네요~
그 때 당시 스마트폰도 없던 시절이라 더 지루했을 거고, 길 찾기도 더 힘들었을 텐데말이죠~

 
 
무튼 아래는 정말 수치를 적을 게요!!!!
참고용으로 올리는 거고, 사람마다 다르니 그냥 저란 사람은 그랬구나 봐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~
 
 

1. 다른 사람과 저의 가장 큰 차이점

 

- 저는 선청성 요루 장애를 가지고 있어서 이로인해 신장이 나빠진 케이스입니당!
- 오른쪽 신장을 유치원 때 아니면 초등학교 저학년 때 완전히 절제했습니당!
그래서 아래 수치들은 왼쪽 신장 하나로 유지하던 시기들 수치예요~

89년도에서 91년도 사이부터 전북대학교 병원을 다녔는데, 너무 오래되서 인지 앱에서 결과가 나오질 않더라구요...
이식 전 수치에서 BUN을 포함해서 소변 수치들이 나오지 않아서 제외하고 작성했어요~
제 기억엔 소변 수치에서 단백질이 항상 4+였는데 없어서 당황...
그리고 BUN 수치도 확인 했던 것 마저 안나와서 당황...ㅎㅎ
 
*** 신장 하나로 유지한 것이지만 신장 공여자와는 다른 경우입니다~
저는 요루 장애로 인해서 신장이 지속적으로 데미지를 입었고
남은 한쪽의 신장도 안 좋은 편이라고 의사한테 들었기 때문에
공여자의 건강한 신장과 동일하다고 볼 수 없습니다!!
 

2. 혈액 검사 및 소변 검사 수치들

- 전반적으로 정상범위에 속하고 다른 참고할 수치가 있는 것들은 중요하지 않고 공간이 넓지 않아서 삭제했어요~
- 병원별로 각 수치들의 정상범위가 달라서 대충 현재 병원 수치 위주로 넣었어요
- 서울대 병원으로 전원하기 전인, 1999년도 10월 이전의 수치들을 확인 할 수 있었으면 좋겠지만... 없어서 아쉽네요~
- 전북대병원 소변검사결과를 확인 못한것도 아쉽~

 

<서울대병원_만 11살~19살 (대학교 1학년)>


- 서울대병원으로 전원했던 만 11살일 때 크레아티닌 수치가 1.00이였네요~
어렸을 때부터 하도 많이 신장 안 좋다는 이야기를 들어서 크레아티닌이 더 높았을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안 높았네요~
 
- 99년도~ 2003년도까진 거의 1.0을 유지하고 2004년~2007년 1월까지는 1.20으로 올랐지만 유지되었어요
하지만 늘상 요로 감염이 항상 동반되었네요!!! (소변에서 박테리아가 매번 검출)
어렸을 때 항상 소변을 많이 참았었는데 그게 균이 매번 검출된 원인인것 같아요~
그리고 이로 인해 신장이 더 빨리 망가졌나봅니다~
 
- 2007년 6월 검사에서 1.5으로 5개월 사이에 0.3이나 올랐었네요
대학생 1학년이였지만 술을 많이 먹지도 자주 먹지도 않았는데...
 

<전북대학교병원_만 24살~ 이식수술 전까지>


- 2012년도, 크레아티닌이 2.15, 1.76이 나왔고
이 때부터 약 5년 사이에 크레아티닌이 급격히 오르면서 이식수술을 진행하게 되었어요
 
- 그나마 2015년도까지는 2점대를 유지했지만 2016년도부터 쑥쑥 올 올라갔네요
15년도에 관심을 가졌다면 더 오래유지했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너무 늦게 드네요~
 
- 크레아티닌이 2점대에서 3점대로 오르는데 1년 3개월밖에 안걸렸네요
그리고 3점대에서 6점대로까지 오른 것도 1년 3개월...
사실 자주 안가서 검사결과 주기가 넓어서 그렇지 사실 더 빨리 올랐겠죠...
 
- 2017년 여름, 통풍으로 입원하면서 가족들에게 사실을 알리고,
이식수술을 준비하게 되었어요~
 

3. 그 때 당시 또다른 일들


<서울대병원_만 11살~19살 (대학교 1학년)>


- 1999년도부터 2004년까지 매년 1-2번씩 외래를 다녔고
제가 하도 병원 가는 것을 싫어하고 사실 병원가도 비뇨의학적인 차도가 없어서 고등학교 입학 전에 다녀오고 더 이상 가지 않았어요~
그래서 위에 말했던 생애 처음(?)으로 개근상을 받기 시작했던 거구요 ㅎㅎㅎ
 
- 고등학교 졸업직전인 2007년도 1월에 오랫만에 갔다가 이제 성인이 되었으니 어린이 병동에서 일반(?) 병동으로 옮기라고 하셨고 6월에 입원해서 검사하자고 했어요~
그래서 대학교 1학년 여름방학 때, 언니랑 같이 서울대학교 병원에 가서 입원~

이것 저것 검사하고 젊은 의사쌤이 검사 결과 A4 용지에 그림을 그리면서 알려주셨는데, 이미 전북대에서 다 검사로 확인된 내용이였던...ㅎㅎ
근데 나이 있는 간호사쌤이 이 종이 누가 썼냐고 날카롭게 물으시고 환자정보 확인...
아... 서울대병원은 종이 한장 값까지 받는 구나... 생각하면서 그 간호사쌤 말투에 무서워졋던~
당시 교수님은 날카로운 인상이 무서우시고 혼나기도 했어요~

소변이 매우 드물게 자궁쪽으로 넘어갔는데 쭉 유지되면(?) 임신이 불가능할 수 있다고 비뇨기과 교수님이 그러셨어요
어렸을 때부터 당연히 요로장애로 결혼할 수 없다고 생각했고 그로 인해 독신주의다라고 겉으로 말하고 다녔지만 그래도 임신이 안된다는 말은 상처였어요~

어느순간 위에 말한 증상은 완전히 없어졌고, 아마 성인되서는 못 느꼈던거 같아요
그리고 제 모든 걸 이해해주는 좋은 사람을 만나서 연애도 만 4년하고 결혼하고 어느새 결혼한지 만 4년이 넘었네요ㅎㅎ
 
그 때 당시 서울대병원 비뇨기과 교수님이 (어린이병동 아님) 엄청 큰 수술 하나를 제안하셨어요
몇개의 과가 합동으로 수술을 진행해야 할 정도라고 하셨어요
대학교 휴학하고 현재의 인공요도를 막고, 새로운 인공요도를 뚫고 방광이 많이 두껍고 뻣뻣하니 대장(?)을 좀 떼서 방광에 이어붙여서 방광이 좀 더 늘어날 수 있게 하는 수술....
(교수님이 직접 대학교 휴학을 권하셨음)
 
지금의 인공요도도 너무 완전 싫은데 굳이 새로운 인공요도를....????
 
그 수술이 너무 너무 싫었고 그래서 그 이후로 병원을 안 갔습니다!!!!!!!!!!!!!!!!!
 
 

<전북대학교병원 _만 24살~ 이식수술 전까지>


- 그 이후로 병원을 안 가다가 2012년도 회사 업무 관련으로 혈액검사 상 백혈구 이상없음을 제출해야 했고
동네병원 갔다가 빈혈 수치 때문이였나 확인서 써줄 수 없다, 전북대학교 병원으로 가봐라
그래서 전북대학교병원 혈액종양내과로 추천(?)해줘서 갔다가 혈액종양내과에서 신장수치보시고 이건 신장내과로 가야한다해서
이때부터 신장내과를 다니기 시작했어요~
 
- 위에 표 보시면 아시겠지만 엄청 띄엄띄엄 외래를 갔어요~
제 상태에 무지했고, 신장에 무관심했고, 나는 아닐꺼야 라는 생각에 수치가 그렇게 나빠질지 몰랐어요~
약도 잘 안 먹었고, 외래도 미루기 일 수~
 
신장하나로 거의 25년을 버티다 이식했는데,
엄마에게 받은 신장으로 현재 만 6년을 거의 채워갑니다~
이런 저런 이벤트들이 있었지만 나름 잘 유지해주고 있어서 너무 감사를 느끼는 날이네요~
 

아픈 신장으로 25년을 버텼고, 무관심속에 25년이 지났으니
이식신장은 관심을 받고 꾸준한 관리로 25년이 아닌 30년 40년도 넘게 쭉 유지할 수 있으면 좋겠네요!!

 
 
 
 
 

728x90
728x90